ball03b.gif  소위 태극이라는 것은 곧 사도(斯道)의 본체(本體)요 만화(萬化)의 근본으로, 자사(子思)가 말한「하늘이 명한 성(性)」이라는 것이다. 《회재집 晦齋集》

  ball03b.gif  태극도(太極圖)에는 무극(無極)으로서 태극(太極)이라 했다. 상천(上天)의 일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나 실상은 조화(造化)의 추뉴(樞紐)이고 만물의 근저(根量)이다. 그러므로 무극(無極)으로서 태극이요, 태극밖에 다시 무극이 있는 것은 아니다. 태극이라는 것은 천지 만물의 뿌리를 가리킨 것이요, 무극이라는 것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묘함을 나타낸 것이다. 《유숭조 柳崇祖/성리연원촬요 性理淵源撮要》

  ball03b.gif 대개 천지의 조화가 생기고 생겨 궁진(窮盡)하지 않아서 가는 자는 쉬고 오는 자는 잇대어서 사람, 짐승, 초목이 천형(千形) 만상(萬狀)으로 각각 성명(性命)을 정(定)한 것이 모두 한 태극(太極) 가운데에서 흘러나왔으므로 만물이 각각 한 이(理)를 갖춘 것이요, 만 가지 이가 함께 한 근원에서 나와서 한 풀, 한 나무가 각각 한 태극이어서 천하에 성(性) 밖의 물건이 없다. 《권근 權近/입학도설 入學圖說》

  ball03b.gif 대개 태극(太極)양의(兩儀)를 생(生)하였지만 양의는 도로 한 태극이니, 곧 충막(沖漠)하여 형기(形氣)가 없으되 만상(萬象)이 이미 구비되어 있고 만물이 분산되어 각기 다르되 하나로 관통되었으니 하나라고 할 수도 없고 또한 둘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여창 鄭汝昌/일두집》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대하여

 

이황의 聖學十圖중에서 第一, 太極圖 풀이 <이상은 역, 삼성출판사>에서

第一,  태극도

 

ball01e.gif  제목 : [최초의 태극기] 그림 발견/서울시 직원 도쿄 도서관서 찾아
    기제 : 1997년 8월 15일 동아일보 1면 (종합)기획

◎박영효가 제작… 1882년 10월 2일자 일본 [시사신보] 신문 게재
 

  

ball01e.gif  제목 : 태극기원형 「고려국기」 발견
    게재 : 1998년 2월 16일 세계일보 
데니.jpg

 

ball01e.gif   제목 : 270년전 태극깃발
     게재 : 1998년 7월 10일 KBS 9시 뉴스

 

ball01e.gif   제목 : 淸 使臣 그림 속 깃발, 태극기 원형일까?
     게재 : 1998년 7월 14일 (화), 조선일보

학계, [奉使圖]내용에  비상한 관심…[바퀴 달린 기암 괴석]도 의문 .

 

ball01e.gif   제목 : [서울시] 여의도공원에 초대형 태극기…광복절에 게양
     게재 : 1998/ 08/13 (목) 조선일보

 

ball01e.gif   제목 : [경기도] 20~40대 주부대상 태극기 이미지 조사
     게재 : 1998/08/18 조선일보

 

ball01e.gif   제목 : 서울수복 48돌 태극기 게양 재연행사
     게재 : 1998/ 09/ 28 조선일보

 

ball01e.gif   제목 : 마라도에 대형태극기 연중 게양
     게재 : 1998/10/13 조선일보

 

ball01e.gif   제목 : 태극기의 元祖 [태극 팔괘도] 발견
     게재 : 1998/11/02(월)조선일보

태극기 원천이 된 `太極八卦圖' 발견,  박영효가 방일 때 지녔던 [어기(御旗)]

서울대 李泰鎭교수

 

ball01e.gif   제목 : 시대별 태극기 영화포스터,10만점 모아
     게재 : 1998/12/25 조선일보


사진설명 : 구한말에 제작된 태극기를 펼쳐 보이며 설명하는 최씨. 그의 집은 수집품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정한식기자)

ball01e.gif 88/10/4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태극(太極)의 도상도 동그라미의 철학의 극치다.
 
동그라미에서 화합을 연상하고 네모꼴에서 대립을 연상하는 것은 세상이 공통되고 있다. 21 개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그라미와 네모꼴의 선호도를 조사한 것을 보았는데 한국, 인도, 일본 순으로 동그라미 선호도가 높게 드러나고 있었다.
비단 어린이뿐 아니라 우리 한국인의 심정 깊숙이 동그라미 철학이 잠재하여 생각이나 행동이나 믿음이나 미(美)나 의식주 생활을 원격으로 조정하고 있다.
한국 철학의 궁리가 그 속에 담긴 태극(太極)의 도상도 동그라미의 극치다.
 
<사진>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의 강강수월래 장면 - 손을 잡고 흥겹게 춤을 추듯 뛰듯이 태극원형으로 돌고 있다.
동그라미는 원융회통의 화합 정신을 담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엘리아데는 태극의 도형에서 `근대 합리주의에 묶여 있는 인간성을 해방하고 다원(多元)의 대립된 가치관을 수렴하여 분열된 이념을 화합시키는 궁극(窮極)의 이치'를 보고 있다.

음악도 양악은 율동미가 기조인데 한국 노래는 고개 넘어가듯 넘어가는 완곡미(婉曲美)가 기조다. 춤도 서양춤은 손발의 직각미(直角美)를 추구하는데 한국 춤은 흐느적거리는 곡선미를 추구한다. 옷도 그렇다. 옷깃, 동정, 섶, 화장, 끝동, 소맷부리, 옷고름이며 발에 신는 버선코에 이르기까지 동그라미의 변주곡이다.
기와집의 추켜세운 처마가 한국미의 대변자처럼 돼 있는 것도 동그라미 철학의 투영이다. 얼굴화장도 콧날을 세우고 아이라인, 립스라인 등 얼굴의 윤곽을 선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양화장이다. 우리 전통화장에서 이 같은 화장을 `화냥년 화장'이라 천시했던 화장이다. 농담을 살려 곡선감 감도는 면에 액선트를 두는 것이 전통 화장이었다. 동그라미는 이처럼 한국인의 원형질이요, 심정이 가장 안정을 갖는 도형이다.

올림픽 폐막식의 여흥을 보면서 이 원형질이 알게 모르게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전통적 농악의 상모가 그려낸 동그라미와 근대적 체조의 리본이 그려낸 동그라미를 조화시켜 온통 장(場)안을 원의 난무로 채운 것이 그렇다. 동그라미를 둘로 잘라 연결시킨 S자형의 오작교에서 원형인 부채와 원형인 바라로 원형을 조형시킨 것도 그렇다. 둥근 인공 달을 띄우고 그 원추형 달빛아래 푸른 장삼을 원형으로 나부껴 물결의 곡선을 이룬 것도 동그라미의 교향악이다.

선(禪)의 세계에서는 종소리를 원심(圓心)에 와 닿는 소리라 하여 원명(圓鳴)-곧 둥근 소리라 하는데 에밀레의 동그라미 소리로 시작하여 동그라미 정신과 동그라미 미학을 행동화한 강강술래로 끝난 폐막식은 한국인의 동그라미 철학을 과시한 한 판이었다.
<88/10/4  조선일보>

  

ball01e.gif 88/9/29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국기 모독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는 한 프랑스선수는 청(靑), 백(白), 적(赤) 3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다닌다. 자기네 국기를 본뜬 국기 머리다. 헝가리의 한 여자선수는 적(赤), 백(白), 녹(綠)의 역시 자기 나라 3 색 국기를 본뜬 국기 귀고리를 하고 다닌다. 영국 선수의 핫팬츠는 유니온잭의 국기팬츠요, 신발은 유니온잭의 국기 신발이며, 미국 선수의 트레이닝복은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Stars and stripes)다.

태극팬츠 팔괘 귀걸이 ?
 
얼굴에 성조기 화장을 한 미국 사나이와 역시 얼굴에 폴란드 국기 화장을 한 아가씨가 키스하는 보도사진도 보았다. 자기 국적을 과시하는 애국심이란 시각에서 보면 애교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 선수가 태극무늬를 머리에 염색하고 태극기로 팬츠를 지어 입으며 팔괘(八卦)를 귀에 주렁주렁 달고서 껌을 짝짝 씹고 다녀도 애교있다고 볼 것인가. 존엄한 국기에 대한 모독이라고 당장 지탄받을 것이다.

그만큼 유럽사람들에게는 국기가 친근화, 통속화되어 있는데 비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멀리 높게 고고하게 나부끼고 있는 것이다. 국기를 둔 이 같은 인식 차이가 왜 생겼을까. 대체로 유럽국가들은 각기 다른 민족, 각기 다른 언어,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이질요소가 복합, 한 나라를 이루고 살아왔다. 이 세상에서 단일언어, 단일문화를 지닌 단일민족이 단일국가를 이루고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13 개국 밖에 없다 한다.

태극기는 그 자체가 민족이요 애국심이다.
 
국기는 국제화 시대의 필요 이전에 국내의 이질요소를 구심시킬 필요에서 탄생하고 있다. 국기에 가장 친근한 나라는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많은 이질요소가 복합된 미국이다. 미국 어디에 가나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하루에 평균 열 번 이상 국기를 보고 산다는 통계도 있다. 피부색도 다르고 믿는 종교가 다르고 쓰는 말은 다를망정 성조기 아래  숙명적으로 미국과 결속돼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면서 산다.
그래서 국기가 친근해지고 친근해지다 보니 통속화된다. 이 실용성에 비해 우리 한국의 국기는 오로지 그 자체가 국가요 애국심이요 내셔널리즘이라는 존엄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국기로 팬츠를 지어 입고 국기로 신발을 지어 신는다는 것은 국체의 모독이요 매도가 된다.

물론 외국에 있어서도 국기는 존엄한 것이지만 그에 대한 오염이 내셔널리즘과 직결되는 민감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미국 NBC 방송요원이 태극기의 태극 속에 지난번 권투난동을 빗대는 권투시합 도안의 티셔츠를 주문했다는 것은 그 저의는 고사하고라도 국기모독이요, 그 모독이 한국사람의 감정을 덧들이는 가증요소가 됐음을 알았으면 한다.
<88/9/29 조선일보>

 

ball01e.gif 89/2/24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태극기와 일장기

국기는 두 가지 쓸모에서 생겨났다. 그 하나는 그 나라를 알리는 상징적 쓸모요, 다른 하나는 그 나라의 국민을 결속시키는 구심체(求心體)로서의 쓸모다. 지금도 대외용 국기와 대내용 국기 두개의 국기를 가진 나라도 적지 않다.

태극기는 한미수교조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태극기가 태동한 것도 한말 중국의 사대권(事大圈)에서 국제권(國際圈)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미수교조약(韓美修交條約)을 준비하면서 국기의 필요성이 거론된 것이다. 당시 이 조약을 간섭하러 조선에 와 있던 중국 사신 마건충(馬建忠)은 이 국기 도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국기의 바탕은 흰빛으로하여 백성을 나타내고, 푸른 구름을 아래로 깔아 관원(官員)을 나타내며, 그 위에 붉은 용을 그려 임금을 나타냄으로써 군관민(君官民)의 조화를 표방하자고 했다. 다만 중국 국기의 용(龍)과 구별하기 위해서 용 발톱을 중국 용처럼 다섯개로 하지말고 네개로 하자는 것이었다.
굳이 용을 도입시키려 한 것이며, 그 용 발톱에 차등을 두려했음은 중국의 속국임을 국기에 나타내려는 음흉한 저의가 드러나고 있다.

태극기는 사대주의 탈피에서부터 탄생하였다.
 
이에 김홍집(金弘集)은 홍룡청운(紅龍靑雲)은 그리기가 번잡스럽다 하고, 우리 조정의 절충안인 태극-팔괘안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태극의 반홍(半紅)이 홍룡(紅龍)이요, 반청(半靑)이 청운(靑雲)이며, 둘레의 팔괘를 팔도로 절충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국기를 사대(事大)에서 해방시키는 데 성공시키고 있었다.
이 태극기가 국민의 구심체로서 힘을 발휘한 것은 3.1 만세운동 때였을 것이다. 그 후 해방이 되고 태극기가 올랐을 때 민족 심정의 공약수가 그토록 그 깃발에 농축됐던 적 또한 없었을 것이다.
국민의 정신적 구심체로서의 국기에는 나라에 따라 두 가지 목적이 깔려있었다. 그 하나는 미국처럼 각기 피가 다른 인종이 각기 다른 용모와 각기 다른 언어와 각기 다른 종교와 각기 다른 문화를 지니고, 한 나라를 이루고 살려면 상징적 구심점(求心點)없이 나라를 결속시킬 수가 없다. 그 구심점으로서 성조기(星條旗)가 갖는 뜻은 막중하다. 미국사람들은 하루 평균 열여덟 번 성조기를 보며 산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건물 안팎 도처에 조기가 나부끼고 있다. 국기가 선용된 경우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히틀러의 나치스기(旗)나 제국주의시대의 일장기(日章旗)처럼 국민의 역량을 독재체제에 결집시키려는 구심(求心)수단으로서의 국기 이용이다. 물론 국기가 악용된 경우다.
2차 대전 후 일본에서는 이 악용에 반발하여 국기를 모든 의식에 강제하지 않음으로써 그 존엄이 땅에 떨어져 있었는데, 이번 개정시킨 각급 학교의 `신 지도요령'에서 국기 게양을 강제 규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처벌한다고 까지 강화시키고 있다. 공교롭게 그 때를 맞추어 우리 나라에서는 관공서나 교실의 정면에 붙은 태극기를 붙이지 않아도 되고, 국기 하강식은 폐지하는 등의 국기 조항의 개정을 서두르고 있고-. 국기를 둔 악용-선용을 잘 가려 국기 조항이 개정돼야 할 일이지만 한-일간의 국기를 둔 동시 반전(反戰)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떨떠름하다.
<89/2/24  조선일보>

 

ball01e.gif 90/8/15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태극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박영효가 아니다.

흔히들 태극기는 수신사(修信使) 박영효(朴泳孝)가 일본 가는 배 안에서 급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박영효는 태극기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은 아니다.
우리 조정에서 국기에 대해 처음으로 눈뜨게 된 것은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지은 `조선책략(朝鮮策略)'에 비롯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개화와 외교에 막중한 영향을 끼쳤던 이 소책자에 조선이 독립국이려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 국기 도형을 중국의 용기(龍旗)를 본떠서 만들되 사각(四角)으로 하지 말고 삼각기(三角旗)로 해서 청나라의 허락을 받도록 할 것을 권하고 있는 점이 고약하다. 이 `조선책략'에 좇기로 한 조정에서는 1880년 동지사(冬至使) 가는 편에 중국의 국기가 어떻게 생겼으며, 조선 국기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이에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은 용 모양을 그려 속국임을 표시하고 그 이름을 용방기(龍方旗)라 함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태극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고종과 김홍집이다.

이 같은 속국 표시에 불만을 품었던 고종과 개화 내각에서는 이를 묵살하고 없었던 일로 덮어 두고 있다. 그 후 국기 문제가 재론된 것은 1882년 한미수교조약을 맺을 때였다. 수교의 실무를 돕기 위해 보낸 청나라 외교관 마건충(馬建忠)이 조선측 대표인 김홍집(金弘集)에게 먼나라와의 수교에 있어 국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조선 조정에서 생각하고 있는 기식(旗式)이 일본 국기를 닮았다 하여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의 조정에서 청나라 속국을 탈피한 나름대로의 국가 도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임금을 뜻하는 붉은 바탕에 조야의 관원을 뜻하는 푸른 색과 백성을 뜻하는 흰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던 것 같다.
`임금님은 붉은 옷을, 관원들은 푸른 옷을, 백성은 흰 옷을 입기에 발상된 도식' 이라고 김홍집이 설명하자, 교활한 마건충은 다음과 같은 수정안을 내놓고 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국기의 바탕을 흰색으로 하고 임금을 붉은 용 그림으로, 관원을 파란 구름 무늬로 타나내되 용발톱을 네 개로 함으로써 중국 국기의 다섯 용발톱과 구분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김홍집은 마건충 안에 다시 수정을 가한다. `홍룡청운(紅龍 靑雲)은 그리기에 번잡하니 흰 바탕에 반홍반청(半紅半靑)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자도를 뜻하는 팔괘(八卦)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비슷함을 면할 게 아니요' 했다.
이런 일이 있는지 넉 달 후에 태극기가 국기로서 공식 채택되고 있다.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이라는 심오한 태극의 이념이 복합된 것이기도 하려니와 태극기가 태어나는 데는 약소국으로서 혹심한 주체적 진통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광복 45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에서는 태극기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대 태극기 전시회를 갖는다기에 태극기 탄생의 주체적 진통을 되뇌어 본 것이다.
<90/8/15  조선일보>

<사진: 청운홍룡기> KBS 역사스페셜에서
마건충 :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네 나라의 국기는 흰 바탕에 푸른 구름, 붉은 용을 그리되, 용의 발톱을 네 개하여........ (용 발톱이 5개인 청국 국기와 ) 구분하는 것이 옳겠소"

ball01e.gif 1998/08/13(목) 조선일보

태극기 달기

사대주의 탈피에서 탄생한 태극기